베트남 생활 기록

혼인 신고 서류 때문에 아내랑 말다툼했던 기억

흰돛단배B 2026. 4. 7. 17:58

베트남 국제결혼을 준비해 본 분들은 알겠지만, 이 과정은 사랑만으로 버티기엔 너무나 가혹한 '서류 전쟁'의 연속입니다. 저와 아내도 예외는 아니었죠. 하노이의 습한 여름날, 혼인 신고를 위한 마지막 서류 뭉치를 들고 카페에 앉아있던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각하면 입안이 씁쓸해집니다. 당시에는 그 종이 쪼가리 몇 장이 우리 사이를 이렇게 갈라놓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정신감정서'였습니다. 베트남에서 혼인 신고를 하려면 외국인 배우자가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진단서가 필요한데, 이게 참 사람 진을 빼놓더라고요. 하노이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정신병원까지 아침 일찍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가, 낯선 검사들을 통과하고 몇 시간을 기다려 겨우 받아온 서류였습니다. 봉투를 열어본 아내의 얼굴이 싹 굳어지는 걸 봤을 때, 저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오빠, 이거 이름 스펠링 하나가 여권이랑 달라. G가 아니라 J로 적혀 있어."

카페 한복판에서 터져 나온 못난 짜증

그 한마디에 제 인내심이 툭 끊겼습니다. 그 더운 날 땀을 뻘뻘 흘리며 병원 복도에서 서성였던 시간들, 그리고 접수처 직원과 말이 안 통해 손짓 발짓해가며 애썼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죠. 겨우 알파벳 하나 때문에 다시 그 먼 길을 가야 한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아니, 그걸 확인 안 해준 병원 잘못이지 왜 나한테 그래? 내가 일부러 틀리게 적으라고 했어?"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아내도 당황했는지 눈시울이 붉어지며 맞받아쳤습니다. "내가 언제 오빠 잘못이랬어? 우리가 소뜨팝(사법부) 가기 전에 확인을 잘 했어야 한다는 거잖아!" 주변 베트남 사람들이 저희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지만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번역 공증 비용은 계속 들어가고, 회사 연차는 이미 바닥난 상황에서 오는 압박감이 결국 가장 가까운 아내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간 겁니다. 식어버린 카페 쓰어다는 입 안에서 설탕 알갱이처럼 꺼끌거렸고, 우리는 한동안 서로 창밖만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노이 사법부, 소뜨팝(So Tu Phap) 가는 길

결국 무거운 침묵을 안고 오토바이에 올라탔습니다. 아내의 허리를 잡지도 못한 채, 하노이 사법부인 소뜨팝(So Tu Phap)으로 향하는 내내 제 마음은 돌덩이를 얹은 듯 무거웠습니다. 앞자리에서 묵묵히 운전하는 아내의 가녀린 뒷모습을 보니 뒤늦게 미안함이 밀려오더군요. 자기도 한국 가려고 고향 떠나 준비하느라 나보다 훨씬 힘들 텐데, 고작 서류 오타 하나에 이렇게까지 화를 낸 제 자신이 너무나 한심해 보였습니다.

 

소뜨팝 입구에 도착해 오토바이를 세웠을 때, 아내가 먼저 제 소매를 살짝 잡았습니다. "미안해, 오빠도 많이 힘들었지? 병원 다시 가면 고쳐줄 거야. 너무 걱정 마." 그 따뜻한 한마디에 가슴 속 응어리가 스르르 풀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제가 먼저 사과했어야 했는데, 오히려 아내가 저를 보듬어주는 모습에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우리는 그곳 벤치에 앉아 병원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다시 방문하기로 약속을 잡았습니다.

혼인 신고, 종이 그 이상의 의미

혼인 신고라는 게 단순히 종이 한 장에 도장을 찍는 과정이 아니라는 걸 그날 뼈저리게 배웠습니다. 한국과 베트남, 서로 다른 두 국가의 시스템 사이에서 외국인 부부로 살아남으려면 이런 사소하고 구질구질한 행정적 갈등을 수없이 이겨내야 하더군요. 우리가 버틸 수 있는 건 완벽한 서류가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마음뿐이라는 걸 하노이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깨달았습니다.

 

다음 날 다시 찾은 병원에서 스펠링이 수정된 서류를 받아들었을 때,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그 작은 종이 한 장을 얻기 위해 쏟았던 땀과 눈물이 마치 훈장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웃으며 하는 이야기지만, 그때 그 카페에서의 말다툼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서류는 언젠가 낡고 사라지겠지만, 그날 함께 나눈 미안함과 고마움은 여전히 제 가슴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지나고 나서야 웃으며 하는 이야기

결국 몇 주 뒤, 우리는 선명한 붉은색의 베트남 결혼 증명서를 손에 넣었습니다. 아내랑 그 종이를 나란히 들고 "우리 이거 피땀 눈물로 만든 거다"라고 농담을 던지며 크게 웃었죠.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누군가 저에게 그 과정을 다시 해보라고 한다면 절대 못 할 것 같습니다. 하노이의 지독한 여름 더위보다 더 무서운 게 베트남의 꼼꼼하다 못해 숨 막히는 서류 행정이라는 걸 몸소 체험했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서류는 결국 시간이 지나면 다 채워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왜 그렇게 날 선 말로 서로를 베어버렸는지 마음의 상처는 생각보다 오래 가더라고요. 저녁에 아내랑 맥주 한잔 마시면서 그날 이야기를 하니 아내가 제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웃네요. "오빠, 그때 진짜 무서웠어!"라는 장난 섞인 핀잔을 들으며, 저도 미안한 마음에 아내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내일은 또 어떤 예상치 못한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엉망진창이었던 서류 준비 과정도 결국은 우리가 가족이 되어가는 소중한 시간이었겠죠. 오토바이 경적 소리가 오늘따라 참 정겹게 들리는 걸 보니, 저도 이제 진짜 하노이 사람이 다 되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