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생활 기록

하노이 생활 3년 차, 가끔 찾아오는 묘한 고독감에 대하여

흰돛단배B 2026. 4. 8. 10:19

오늘 퇴근길은 유독 오토바이 경적 소리가 날카롭게 귓가를 때렸습니다. 하노이 생활도 이제 3년, 이 지독한 소음과 매연에도 이력이 났다고 생각했는데 가끔은 이렇게 예고 없이 마음 한구석이 뻥 뚫린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네요. 헬멧 사이로 끈적하게 들어오는 하노이 특유의 덥습한 공기가 오늘따라 유난히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것 같습니다.

 

사실 베트남에서 가정을 꾸리고 아내와 함께 지내면서 외로울 틈이 어디 있겠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맞는 말이죠. 퇴근하고 집에 가면 따뜻한 밥이 있고 나를 반겨주는 소중한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큰 축복입니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이방인 특유의 고독감이 불쑥 찾아오곤 합니다. 이건 한국말로 마음껏 수다를 떨고 싶은 갈증이라기보다는, 그냥 내가 나고 자란 곳의 공기와 분위기, 그 익숙한 정서가 미치도록 그리운 그런 종류의 감정입니다.

 

진짜, 가끔은 코끝이 찡해지는 한국의 차가운 겨울바람이 사무치게 그립기도 합니다. 여기는 일 년 내내 땀이 배어 나오는 끈적이는 여름뿐이니까요. 에어컨 바람 아래서도 가시지 않는 이 묘한 답답함은 아마 마음의 온도 조절 장치가 고장 나서 생기는 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익숙한 거리에서 느끼는 낯선 이방인의 감각

단골 쌀국수집 플라스틱 목욕탕 의자에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퍼(Pho)' 한 그릇을 앞에 두고도 문득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주변의 빠른 베트남어 대화 소리가 마치 알아들을 수 없는 배경음악처럼 귓가를 스쳐 지나가고, 나는 그 거대한 삶의 흐름 속에 섞이지 못한 채 둥둥 떠 있는 작은 섬 같다는 느낌. 아내에게 이런 마음을 털어놓으면 혹시나 서운해하거나 걱정할까 봐 혼자 속으로 삼키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하노이의 밤거리는 더 화려해 보이고 나는 더 작아지는 기분입니다.

 

얼마 전에는 한국에 있는 친구와 짧게 통화를 했습니다. 친구는 "야, 거기 물가도 싸고 아내도 예쁜데 뭐가 걱정이냐, 부럽다"라고 말하더군요. 그 말에 "그래, 나 잘 살고 있지"라고 대답하며 웃었지만, 통화를 끊고 난 뒤의 적막함은 평소보다 더 짙었습니다. 친구가 말하는 '부러움'의 요소들이 정작 내 마음속의 이 깊은 허기를 채워주지는 못한다는 걸 설명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아마 이건 직접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보지 않으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겠죠.

 

딱히 무슨 큰일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닙니다. 서류 준비가 힘들어서도 아니고, 누가 나를 괴롭혀서도 아니죠. 그냥 이방인으로 산다는 건 평생 완벽하게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빈칸을 하나씩 품고 사는 일인 것 같습니다. 아내의 손을 잡고 호안끼엠 호수를 걷다가도 문득 걸음을 멈추고 먼 하늘을 보게 되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이겠죠. 아내는 말없이 제 손을 더 꽉 잡아주는데, 그 온기가 고마우면서도 미안해서 괜히 딴청을 피우곤 합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런 고독함이 예전처럼 무겁기만 하지는 않다는 겁니다. 이제는 '아, 또 그 친구가 찾아왔구나' 하고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아주 조금은 생겼거든요. 집에 돌아가 아내가 정성껏 끓여준 시원한 '까인(Canh)' 한 그릇 마시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이 도시의 소음 속으로 뛰어들 용기가 생깁니다. 베트남 음식의 향채 냄새가 이제는 제법 제 몸의 일부처럼 익숙해진 것처럼요.

 

하노이에서의 3년, 얻은 것도 많고 잃은 것도 있겠지만 확실한 건 제가 조금 더 단단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외로움도 결국은 이곳에 깊게 뿌리를 내리는 과정 중 하나일 테니까요. 오늘 밤은 유독 밖에서 들려오는 오토바이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리네요. 내일 아침에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아내와 함께 동네 시장이라도 한 바퀴 돌아봐야겠습니다. 거기서 활기차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이 묘한 감정도 조금은 씻겨 내려가겠죠.

 

그냥 그런 밤입니다. 맥주 한 캔 시원하게 따고 싶은데, 내일 일찍 나가려면 참아야겠죠. 머릿속이 복잡할 땐 그저 잠이 보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