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도로 위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멘탈 나간 날
하노이에서 오토바이를 탄다는 건 매일 아침 목숨을 건 도박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처음엔 무서웠고, 좀 지나니 익숙해졌고, 나중엔 내가 베트남 사람이라도 된 양 요리조리 칼치기를 하며 달렸다. "나는 사고 안 나겠지"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던 그날 오후, 하노이의 도로는 보란 듯이 내 오만한 코를 납작하게 눌러버렸다.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손바닥에 땀이 흥건해진다.
찰나의 순간, 그리고 멈춰버린 세상
쾅. 소리보다 먼저 느껴진 건 몸이 공중에 붕 뜨는 이질적인 감각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내 시야는 하늘과 땅을 번갈아 비췄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아스팔트 바닥에 대자로 뻗어 있었다. 주변을 가득 채우던 오토바이 경적 소리가 멀게만 느껴지고, 내 거친 숨소리만 귓가에 크게 울렸다. "아, 나 사고 났구나." 머릿속엔 그 생각 하나뿐이었다. 일어날 엄두도 안 났고, 그냥 이대로 눈을 감고 싶다는 도망치고 싶은 기분만 가득했다.
무릎이 따끔거리고 팔꿈치가 화끈거리는 게 느껴졌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건 나를 둘러싼 현지인들의 시선이었다. 수십 대의 오토바이가 내 주변을 스쳐 지나가며 나를 구경거리 보듯 쳐다봤다. 누군가 도와줄 법도 한데, 그 냉정한 흐름 속에서 나는 철저하게 이방인이었고 이물질이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우려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다시 주저앉았다. 그때 느꼈던 그 고립감은 평생 잊지 못할 거다.
쓰러진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우는데 왜 그렇게 무겁던지. 평소엔 가뿐하던 녀석이 오늘따라 나를 억누르는 쇳덩이처럼 느껴졌다.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마주한 서러움
사고 상대방인 아저씨가 뭐라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베트남어를 못하는 나로선 그게 욕인지, 따지는 건지, 아니면 괜찮냐는 걱정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그냥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며 고개를 숙였다. 내가 잘못한 게 맞는지조차 판단이 안 서는 상황에서, 그 아저씨의 험악한 표정과 삿대질은 내 멘탈을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가슴이 두근거려서 숨이 안 쉬어지는데, 눈앞은 핑핑 돌고... 진짜 울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며 나를 가리켰다. 그들의 말속에 내 비난이 섞여 있을 것 같아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한참을 실랑이하다가 대충 상황이 정리되고 상대방이 떠났을 때, 나는 길가에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손이 덜덜 떨려서 시동조차 걸 수 없었다. 하노이의 뜨거운 열기는 여전했는데, 내 몸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가는 기분이었다. 이게 대체 왜 나한테 일어난 일인지 이해가 안 갔다.
집으로 오는 길이 지옥 같았던 30분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옆을 지나가는 작은 오토바이 소리에도 깜짝 놀라 브레이크를 밟았고, 교차로에서는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아까 그 사고 장면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려 미칠 것 같았다. 30분 남짓한 귀가 시간이 마치 몇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평소엔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치던 골목길 하나하나가 나를 잡아먹으려는 괴물처럼 보였다. 그냥 오토바이를 버리고 택시를 탈 걸 그랬나 싶더라.
집 주차장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내리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시동을 끄고 정적이 흐르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픈 건 둘째치고, 그냥 너무 무섭고 외로웠다. 이 낯선 도시에서 사고 하나에 이렇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게 서글펐다.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먼지투성이에 얼굴은 핼쑥해져서 정말 봐줄 수가 없었다. 오늘 하루가 도대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그날의 비린내
집에 들어오자마자 옷도 안 벗고 바닥에 누워 있었다. 천장의 실링팬이 돌아가는 소리만 공허하게 들렸다. 샤워를 하려고 옷을 벗으니 무릎과 팔꿈치에 시퍼런 멍이 들어있고 살점이 패여 있더라. 따가운 물이 상처에 닿을 때마다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마음속의 상처는 그보다 훨씬 깊었다. 씻고 나와서도 몸 어딘가에서 아스팔트 냄새와 매연 비린내가 계속 나는 것 같아 몇 번을 더 씻었는지 모른다.
침대에 누웠는데 눈을 감으면 자꾸 사고 순간이 반복 재생됐다. 쾅 하는 소리, 몸이 뜨는 느낌, 바닥에 부딪힐 때의 충격... 그날 이후로는 길가에 서 있는 오토바이만 봐도 괜히 가슴이 답답해진다. 큰 사고가 아니었음에 감사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하노이 도로에 대한 정이 뚝 떨어져 버렸다. 이제는 오토바이 시동 거는 것조차 미리 겁부터 난다. 그냥 한동안은 집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창밖으로 들리는 오토바이 경적 소리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날카로운지. 밤은 깊었는데 잠은 안 오고, 그날의 기억만 머릿속을 맴돈다. 하노이 생활이 익숙해졌다고 자만했던 대가가 너무나도 가혹하다. 오늘 하루도 참 길었다. 진짜 지독하게 길었다.
오토바이 사고 한 번에 하노이라는 도시가 이렇게 무서워질 줄은 몰랐네요. 몸 상처는 금방 아물겠지만, 그때 느꼈던 그 막막함과 공포는 오래갈 것 같습니다. 당분간은 그냥 오토바이 키 서랍 깊숙이 넣어두고 잊어보려고요.